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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공주 리뷰

by yescch 2025. 7. 4.

 

한공주
한공주

 

말할 수 없는 상처를 품은 소녀의 이야기

 

영화 〈한공주〉는 한국 독립영화사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작품 중 하나입니다. 2014년 개봉 당시, 작은 규모의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고 크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수진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모두 맡았으며, 배우 천우희는 이 영화를 통해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공주〉는 사건 자체를 드러내기보다 그 사건 이후의 시간을 더 길게 비춥니다. 그래서 관객은 피해자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불안정한지를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성폭력의 피해를 소재로 삼은 영화가 아닙니다. 고통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2차 피해와 낙인, 피해자를 둘러싼 무관심과 냉대, 그리고 간혹 다가오는 따뜻함마저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복잡한 심리를 진실하게 그립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1. 한공주 등장인물 – 고통을 품은 소녀와 그 곁의 사람들

 

〈한공주〉의 주인공은 고등학생 한공주입니다. 천우희는 공주의 역할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상처와 두려움, 그리고 미묘한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냅니다. 공주는 사건 이후 자신의 이름조차 숨기며 살아갑니다. 가족과도 멀어졌고, 친구도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학교와 기숙사에서조차 “다시 들키면 어쩌지” 하는 불안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천우희의 연기는 공주가 내면에서 얼마나 깊은 죄책감과 공포를 품고 있는지를 한 장면 한 장면에서 절절하게 보여줍니다.

영란(이영란 분)은 공주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는 인물입니다. 영란은 음악을 좋아하고, 밝은 성격으로 공주의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려 합니다. 하지만 공주는 아무도 자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은 누군가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영란의 따뜻한 시선은 공주에게 잠시나마 숨 쉴 틈을 주지만, 그 순간들마저 금세 깨져버리곤 합니다.

담임 교사 정선생(백수장 분)과 기숙사 사감(김소영 분)은 어른으로서 공주를 보호해야 하지만, 그들은 피해자를 돌보는 데 서툽니다. 정선생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몇 차례 공주의 곁에 머물려 애씁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늘 어딘가 부족하고, 공주는 그 틈에서 다시 혼자가 됩니다.

가해자들의 부모가 찾아와 합의서를 내미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 “이제 그만 잊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은 공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또 다른 폭력이 됩니다. 영화는 이 모든 관계를 한 가지 시선으로 단정하지 않으며, 현실의 복잡함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2. 한공주 줄거리 – 떠나도 떠나지 않는 그림자

 

이야기는 공주가 새로운 기숙사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과거를 감추고, 조용히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합니다. 방에 짐을 풀면서도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기대나 설렘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기서도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표정이 먼저 보입니다.

공주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합니다. 수업 시간에는 시선을 바닥에 두고, 점심시간에는 혼자 밥을 먹습니다. 영란은 그런 공주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먼저 말을 걸고, 음악을 함께 듣자고 제안합니다. 그 순간 공주는 짧게나마 웃음을 지어보이지만, 이내 얼굴이 굳어버립니다. 행복이 오래갈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듯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사건이 다시 소문이 되어 번집니다. “그 아이가 그 사건의 피해자래.” 소문은 빠르게 학교를 덮고, 공주는 또다시 시선에 갇힙니다. 기숙사 문 앞에 서서 숨죽이며 우는 장면은 공주의 삶이 얼마나 좁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가해자 부모가 찾아와 합의서를 내밀고, 돈으로 사건을 덮으려 할 때 공주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 침묵에는 공포와 수치심,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지독한 단념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며, 오히려 침묵 속에서 더 큰 폭력을 느끼게 합니다.

마지막에 공주는 바닷가로 향합니다. 바다 앞에 서 있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작은 결심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완전한 구원은 아닐지라도, 스스로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존엄을 확인하는 순간처럼 보입니다.

 

3. 영화 한공주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한공주〉는 “피해자는 왜 끝까지 혼자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에 나오는 어른들은 공주에게 동정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거리감을 둡니다. 친구들의 부모는 공주와 아이들이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해하며, 학교는 사건을 조용히 묻으려 합니다. 공주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미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이 영화가 더 가슴 아픈 이유는, 공주가 끝까지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피해자인데도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더 조심했어야 한다고 자책합니다. 그 모습은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2차 피해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한공주〉는 상처가 결코 단숨에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히 보여줍니다. 공주는 새로운 학교에 가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트라우마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이 영화는 그 회복의 과정을 극적이거나 낭만적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진실합니다.

 


4. 한공주 최후 감상평

 

〈한공주〉는 피해자 중심의 시선으로 사건 이후의 삶을 그린 드문 영화입니다. 이수진 감독은 피해자를 동정의 대상으로만 소비하지 않으며, 그 삶의 무게를 존중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소녀의 고통을 볼거리로 삼지 않고, 진정한 공감을 끌어냅니다.

천우희의 연기는 단순히 잘하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그녀는 공주라는 인물을 완전히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 연기합니다. 그 결과 관객은 공주가 느끼는 공포와 절망, 그리고 작게라도 웃으려는 순간까지 고스란히 함께 체험하게 됩니다. 이영란의 따뜻한 시선과, 백수장의 서툰 보호자 역할도 영화의 현실감을 더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나는 누군가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에 다가갈 용기가 있었는가?”라는 물음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한공주〉는 상처받은 사람이 자신의 존엄을 붙잡는 것이 얼마나 큰 싸움인지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결코 편하게 볼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하는 영화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이 이야기와 질문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마주할 때, 이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조금은 더 따뜻하게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