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선택이 역사가 되다
영화 〈변호인〉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시기 중 하나를 배경으로, 개인의 양심과 용기가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었던 양우석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실화를 모티프로 삼아 철저하게 인간 중심의 드라마로 풀어냈습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수많은 관객의 공감을 얻었고, 송강호의 인생 연기로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단순히 한 변호사의 영웅담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이 기억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1. 등장인물 – 평범했던 변호인의 각성
영화의 주인공 송우석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세금 전문 변호사입니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송우석은 처음부터 정의롭거나 이상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공에 목마른 현실적인 인간입니다. 고졸 출신으로 사회에서 무시당하던 그가 수많은 노력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변신합니다.
송우석은 처음에는 세금 사건과 부동산 소송에만 몰두하며, 변호사라는 직업을 안정된 수입의 수단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가 가난과 무시 속에서 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 그에게 국밥 한 그릇을 나눠주었던 국밥집 사장 최순애(김영애 분)와의 인연이, 결국 그의 인생을 바꾸는 씨앗이 됩니다.
임시완이 연기한 진우는 최순애의 아들이자 대학생입니다. 그는 시대에 대한 고민을 품은 청년으로, 불온서적을 읽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었다는 이유로 공안당국에 체포됩니다. 진우의 순수함과 고통은 송우석이 외면할 수 없는 양심의 경계가 됩니다.
영화 속 검사와 경찰들은 당시 권력기관의 전형적인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법과 국가 안보를 빌미로 청년들을 고문하고, 증거를 조작하며, 법정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들의 냉혹한 태도는 당시 한국 사회의 공포와 억압을 상징합니다.
영화 후반부에는 송우석이 점차 스스로의 책임을 자각하며 변호사의 본질적 역할을 깨닫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변화의 과정은 인간적이고 고통스럽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2. 줄거리 – 침묵에서 외침으로
이야기는 1980년대 초 부산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잘나가는 세무 전문 변호사 송우석은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맡습니다. 그의 삶은 부와 안정으로 조금씩 채워집니다. 국밥집 사장 최순애는 그를 늘 따뜻하게 맞이하며, 예전처럼 고마움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송우석은 과거의 은혜를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잊어버린 듯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우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됩니다. 그는 친구들과 불온서적을 돌려봤다는 이유만으로 고문을 당하고, 허위자백을 강요당합니다. 신문에서 사건을 접한 송우석은 처음에는 이를 무시합니다. ‘괜히 위험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현실적인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우의 처참한 상태를 목격하고, 그 어머니의 눈물을 본 순간,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진우가 끌려간 법정에서 송우석은 “변호인이 필요하다”는 말에 망설이지만 결국 손을 듭니다. 그 순간이 바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평범한 돈벌이에만 몰두하던 변호사가, 목숨까지 걸어야 할 싸움에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재판은 이미 권력이 정해놓은 결과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공안당국은 조작된 증거를 내밀며 “국가전복 기도”를 주장하고, 재판장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합니다. 송우석은 모든 방어 논리가 막히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가 법정에서 “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그 시대의 억압에 대한 통렬한 저항이자 선언입니다.
3. 시사점 – 법의 존재 이유를 묻다
〈변호인〉은 단순히 개인의 성장담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법이 권력의 시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국가와 권력은 ‘안보’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법정은 정의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라 억압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송우석의 변화는 관객이 스스로에게 묻게 만듭니다. “나는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송우석은 처음부터 정의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자기 이익에 솔직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각성이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누구든 침묵에 익숙해질 수 있고, 동시에 누구든 싸울 용기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는 “법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법은 국민의 최소한의 안전망이어야 하지만, 부당한 권력에 의해 얼마든지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점을 똑똑히 보여주면서, 오늘날에도 법이 여전히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4. 최후 감상평
〈변호인〉은 한 사람의 작은 선택이 어떻게 커다란 물결을 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송강호는 특유의 섬세함과 인간적인 깊이로 송우석을 연기합니다.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관객이 함께 분노하고 함께 두려워하며, 마지막에는 함께 용기를 내게 만듭니다. 임시완은 억울하게 고통받는 청년의 순수함과 두려움을 담담하게 연기하며, 이야기의 슬픔을 깊이 더합니다. 김영애가 보여준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과 절망은 관객의 마음을 오래 붙잡습니다.
이 영화는 과거의 사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억울하게 고통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정의와 양심은 늘 시대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숙제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서 질문이 울립니다. “나는 어떤 순간에 침묵을 택하고, 어떤 순간에 목소리를 낼 것인가?” 이 질문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물음입니다.
〈변호인〉은 그 시절의 부끄러운 현실을 마주보게 하며, 동시에 인간의 양심이 가진 힘을 믿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가슴에 남습니다. 언제라도 다시 꺼내 보며 “법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기억하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점을 조용히 일깨워줍니다.